2016-03-19~20. 선비정신과 구곡동천에서 미래의 길을 찾다.


건축, 미술, 음악 등 예술이라 그룹되어 묶여지는 것들은, 그 당시의 시대적 정신, 즉 철학과 문화를 반영해야 한다. 그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텅비어 있는 빈 그릇이나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 작품을 이해 하는데 있어 시대를 둘러싼 철학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당시 예술이 무엇을 담아내려 했었는지 정확히 이해 할 수 없다.

건축의 경우에는 다른 예술과는 달리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차이가 있겠다. 다행히도 그것을 통해 옛 시대정신을 거꾸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그것을 대표하는 것은 유학이었다고 한다. 유학이라는 철학을 잘 모르더라도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을 경험해보면 그 시대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의 원천을 상상해 낼 수 있다.

마당이 나뉘어 있는 모습들, 한 집 내에 건물들을 구획지어 주는 낮은 담벼락, 사랑채와 안채, 사당으로 구분 지은 남녀와 조상의 영역, 초석의 형태로 깍아 놓아 받쳐놓은 기둥의 겸손한 모습, 대청마루, 누마루에서 창밖으로 내어 놓은 차경, 벽을 나누는 기둥과 인방의 나뉨 비율, 안채로 들어가는 문에 치마를 배려하듯 낮춰 놓은 문틀, 굽어있는 대들보, 처마 밑에 달린 작은 풍경, 그리 굽지도 퍼지지도 않은 처마선 등.

자연 앞에서 겸손하고, 그것으로 사상을 연마한다. 숭고함을 아름답게 여기고, 소신과 지조를 소중히 한다. 각 사람이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한다.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강약이 있음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즐긴다.

체험으로 유추해 본 조선시대 건축물에 대한 시대정신이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한국 고전음악 팀의 연주가 포함되어 있었다. 연주는 안채 대청마루에서 이루어졌다.

실제로 대청마루와 마당은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사를 치루는 공간이었다. 대청마루는 가변형 문짝 들을 통해서 유기적으로 마당과 연결지어지며 행사의 다양성을 소화 한다.

대청마루는 작은 무대이기도 하다. 양옆 두 변이 막혀있고, 뒤는 막으로 된 목판이나 창호지 창으로 되어 있어 소리를 적절히 앞뒤로 분산시켜 음을 은은하게 만들어 준다. 천정은 서까래가 양갈래로 경사지게 되어있어 연주되는 악기의 소리를 반사시켜 마당 뒤까지 소리를 뻣치게 하고, 마루의 목판은 우퍼처럼 진동으로 저음을 증폭시켜 준다. 또, 건물 자체가 훌륭한 무대의 배경이기도 하니 잘 설계되어진 콘서트홀이 부럽지 않은 것이다.

연주되어지는 고전음악의 선율은 마치 눈에 보이듯 선명하게 건물과 조화를 이루어 낸다. 청각적 경험이 시각적 경험으로 변형되어 느껴지는 놀라운 경험이다. 한복에 덧입는 두루마기 처럼, 건물과 음악이 하나의 구성이라 해도 믿길만큼 경이로운 것이다.

함양은 서울에서 3시간 30분이면 닫는 거리다. 너무 멀지도 그리 가깝지도 않은 거리다.

이 좋은 경험을 컨텐츠로 잘 살려낸다면 짧은 시간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쇄락해 가는 시골이라는 것에서 벗어나 훌륭했던 우리 선조들의 마을이었다는 자부심으로, 어쩌면 새로운 부흥기를 이끌어 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미래의 길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희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