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엊그제 페친 분 중에 한 분(이상구 선생님)이 영화 '소나기(2005년, KBS TV 문학관)' 영상을 올려 주셨었다.

그러고 보니 그 순간 잊고 있었던 기억이 각성되어 떠올랐다.

어렸을적 나는 많은 형과 누나들 덕에 상당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 보다도 많이 조숙 했었다.

형과 누나 들은 나를 마치 소품처럼 여기 저기 많이 데리고 다녔었다. (당시엔 난 대단히 귀여웠었....)

귀여움 포텐 터지던 어린시절, 영화로 만들어진 '소나기' (1978년작)를 형인지 누나인지를 따라 가서 본 기억이 난다. 자료를 찾아보니 고영남 감독, 이영수, 조윤숙 주연 이었다고 한다.

그 때 기억을 곰곰히 더듬어 보면 여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소설보다 훨씬 더 조숙한 이야기로 그려져 있다.

주연의 연기도 국민학교 학생 수준 이상으로 성숙한 모습이었다.

서로의 존재만 인식하며 호기심만 가득하던 시골 소년과 도시 소녀. 소나기 내리는 날 이루어지는 그 둘의 스킨쉽과 그 스킨쉽으로 인해 서로의 옷에 배어버린 얼룩.

당시에 나는 그 화끈 거리면서도 알수없는 두근거림으로 가득찬 느낌이 들었던 것을 잊지 못한다.

그 후로도 가끔 TV에서도 그 영화를 상영해 줬었고, 그 화끈한 기억(?)때문에 기회 될 때마다 재상영되는 그 영화를 놓치지 않고 봤었드랬다.

그러며 10년이 지났다.

군사 독재가 판을 치던 무렵이라 당시의 한국 영화는 소재가 극히 줄어 들었고, 대부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작품들 로 가득 했었다. 문학 작품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TV물로 문학작품을 옮겨 만드는 프로그램이 생겨 났었다. TV문학관, 베스트 극장 같은 것이 그런 류 이다.

'TV문학관'으로 명성을 떨치던 KBS는 독재 정권이 민주화 운동으로 힘을 잃어감을 대변하듯 점점 그 힘이 떨어졌고, 당시 영상미와 특유의 색감과 감성을 잘 끌어 올렸던 'MBC의 베스트 극장'은 반등을 하며 나날이 그 위세를 돈독히 하고 있었다.

그러던 1987년, 무덥던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던 어느날, 최종수 연출, 김석기, 조은경 주연의 '소나기'가 베스트 극장으로 만들어 졌다.

그렇잔아도 감성이 많은 시절에, 호르몬까지 냄비에 올려 놓은 찌게처럼 바글바글 끓어 오르던 때였으니 얼마나 로맨틱했을까.

나는 당시에 영화와 음악을 매우 좋아했었다. 한번 꽂히는 영화는 수십번 되풀이 하며 봤었고, 영화 음악(OST)까지 갖은 방법으로 모으기도 있었다. 시골 아이 치고는 그 감성 자체는 참 고급지고 서울스러웠었나 보다. 덕분에 단골이 된 레코드 가게도 생겨나고, 일하는 누나는 나를 무척이나 이뻐했던 기억도 있다. 엥간히 구하기 어려운 OST도 그 덕에 많이 구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누나는 잘 살고 있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친해져도 되지 않았었을까 싶기도 하다. 어우 쑥맥~!

어쨋든 당시 만들어진 '베스트 극장, 소나기'는 1978년의 감성과는 전혀 달랐다. 좀더 원작에 가깝고 순수해졌다고나 해야 할까? 순박해 졌다고 해야 할까?

그 드라마를 보고 나면 잘 그려진 수묵담채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하는게 좋을것 같다.

더군다나 여기서 음악을 맡았던 고 신병하씨의 음악은 그 영상의 감성을 극으로 끌어 올려준다. 아름답기도 하고, 알싸하기도 하고, 아쉽고도 그윽한 음악이라고 하고 싶다. 듣고나면 소나기 후의 안개가 느껴지는 음악같다는 생각이 든 적도 많다.

당시에 나는 몇 번 더 상영했던 이 드라마를 통으로 녹음 했었던 기억도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가끔씩 스물거리는 내 집요함은 이 당시에 만들어 진 것 같기도 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고 신병하씨는 당시 영화 음악을 하고 있었던 분이었고, 그 분야의 굵직한 선을 긋고 있었던 분 이었다. 실제로 이 소나기 OST는 한국 영화 음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음악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고 한다.

오늘 온 세상을 시원하게 적시는 비로 인해, 잊고 있었던 어린시절의 그 감성과 기억이 추억 되어 기분이 참 좋다.

<영상과 음악> https://youtu.be/bDQdcM1PIhc

<음악> https://youtu.be/CoILCRpA0LE

<1978년 영화 '소나기'> https://youtu.be/EAk1x2vd7Z8

<1987년 베스트극장 '소나기'> 1987.10.4 심양홍, 고두심, 김석기, 조은경 최종수 作品 - 아버지와 아들(1983), 사랑과 야망(1987), 겨울행(1993), 한강수 타령 (2005) 등..

덧붙임 :

내가 좋아 했던 것이 소설 소나기였을까? 영화 소나기였을까? 그 음악이었을까? 주연 여배우(?)였을까? 아님 그 두근거리는 풋사과 같은 어린 연애의 감정이었을까?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그저 '소나기'라는 단어 만으로도 마냥 설레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