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0. 단맛의 기억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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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직장인들이 남이 만든 음식을 접하는 것은 점심 때이다.

아침 저녁은 부인이나 어머니가 차려주신 집밥을 먹고, 점심은 남이 만들어 준 밥을 먹는게 직장인이다.

하루에 꼭 한번은 남이 만들어 준 음식 맛을 어쩔수 없이 보게 된다.

그러니 그 낯선 다른 맛에 민감 할 수 밖에 없다.

대부분 점심을 만드는 식당은,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 들을 서너차례 회전 시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음식을 정성들여 만들수도 없고, 그로 인해 맛있는 곳은 거의 찾기 어려웠었다.

그나마 그럴싸한 맛을 내는 집은 감칠맛을 내는 MSG 범벅이기 일수였다.

점심을 먹고난 뒤의 텁텁함은 이를 닦아도 잘 가시지 않는 그런 맛들이다.

그러던 어느날 부턴가 음식 맛이 점점 달아지기 시작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 칠 팔 년 전부터 였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동료들끼리도 점덤 달아지는 식당들의 그 단맛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어디서 줏어 들은 이야기 들을 조합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 그 이유를 추측해 보자.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행복지수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을거라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첫째 ...

당시에 대기업에서는 조기 퇴직이 유행이었었다.

반 강제로 조기 퇴직하는 분들이 퇴직금 탈탈 털어 할 수 있는 만만한 것은 식당이었다.

서류 작성 외에는 아무것도 해 본적도 없고 할 줄도 모르는 그들은 처음 음식을 만드는데 무척이나 애를 많이 먹었을 것이다.

식당만 차려논다고 손님들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 하루라도 빨리 남들이 만드는 음식 맛을 흉내내는데 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누룽지 만들듯 쉽지만은 않았고 그나마 사람들을 끌 수 있는 단맛을 많이 사용해 맛을 감췄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또, 고용비용이 만만치 않다보니 정식 조리사를 고용하는 것보다 야매 조리사를 많이 고용 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음식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으니 그 맛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는 중국교포들이 식당 홀 서빙에 대거 유입되었던 때였다. 퉁명스럽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아 홀 서빙으로는 적합치는 않았지만 어쩔수 없이 그리 한 것은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초보 식당 주인들의 방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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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

달디 단 음식을 먹으면 행복해지고 몸이 느슨해진다.

서양에서 초코렛 같은 달콤한 디저트를 선호하는 이유가 그런것 때문이다.

음식과 디저트가 서구화 되면서 아마도 우리의 몸은 그것에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 졌다.

반면에 우리 사회는 갈수록 행복의 지수가 낮아졌다. 온갖 시정잡배와 사기꾼들이 지천에 널려 있으니 그 이유야 곰곰히 찾지 않아도 될 듯 하다.

그들이 우리의 삶에 깊숙히 파고 들어 올 수록 몸은 지치고 마음은 황폐해 졌다.

그 사회를 물리적으로 탈출 할 수 없는 우리는 다른 대체 수단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그중의 하나가 음식으로의 탈출이고, 이미 길들여지고 중독된 단맛으로 자위를 하며 대리 만족했을 것이다.

씁쓸하지만, 단맛은 암울하고 답답한 썩어가는 우리 사회로 인해, 여름날 뒤안에서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곰팡이처럼 스스로 배양 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