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18 서울 서쪽 마을 과거 속으로의 여행 4탄 (북아현동-영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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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북아현 답사는 짧게는 현재의 재개발 문제에서 부터, 길게는 조선시대 후기까지의 시간속 여행이었다.

여행 중에는 현실의 시간과 공간을 깊숙히 통과해야 한다.

이 북아현 골목에서 마지막 즈음 만난 지긋한 노년의 메아리 없는 분노와 절규는 한편으론 공포스럽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골목답사에 대한 많은 생각을 다시 정비하게 한 계기가 됐다.

그럼 지금부터 그 속으로 들어가보자.

아현지역은 1950년대 이후 지역적 연고가 부재한 사람들이 모여든 동네라고 한다.

이번에 답사한 북아현 지역 역시 1930년대 지도로 비춰보아 등고선만 표현되어있어 근대에 이루어진 자연 발생적 동네임을 알 수 있다.

답사를 위해 모인 곳은 옛 굴레방다리가 있던 곳이라고 했다.굴레방 다리란, 이제는 철거된 아현 고가도로 아래의 창천(倉川)이 복개된 지점에 있었던 다리를 일컬어 불렀던 명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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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통해, 김포에서 생산된 쌀을 실어 나르던 장사치들이 주막이 많은 이곳에서 쉬어갔었다.쌀가마를 끌던 말과 소의 굴레를 벗기고 쉬는 곳이라고 해서 굴레방이라고 했다고 한다.

굴레방(바위)은 그 굴레를 닮은 바위를 부르는 명칭이라 했다고 하며, 자료를 찾아보니 그 위치는 경의선 터널 즈음이다.

쌀가마와 말과 소, 그리고 그 굴레를 벗기고 쉬는 곳...정말 재미난 지명 아닌가?

그 당시의 경제의 주류 였던 물류의 흐름도 상상해 볼 수 있으니 이거 전설의 고향이 따로 없다.

창천(倉川)은 굴레방 즈음에 북에서 남으로 흐르던 개천을 일컷는 지명이다.

이 개천의 지명에 대한 설은 여러가지가 있는 것 같다.서울역사박물관의 자료에 따르면 이곳을 부르던 지명은 녹개천(놋개천), 굴레방천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서울지명사전에서는 녹개천을 "서대문구 북아현동 너분배에서 흘러 굴레방다리로 들어가는 내로, 나무가 많고 수석이 아름다웠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창천(倉川)이란 지명에 대한 유래는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에 시내의 서쪽편에 살던 관리들에게 줄 급여(곡식)를 관리하던 광흥창(廣興倉)이란 창고가 이곳 근처에 있었다.

창고 근처에 있는 시내라는 뜻으로 창천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어쨋든 이 개천의 이름은 1960년 복개하는 과정에서 각 동별 지명을 따라 '아현천, 공덕천'등으로 이름이 바뀐것으로 보인다.

철거된 아현고가 자리 앞에는 '장미, 다모아, 산호...'같은 간판을 붙여놓은 뭔가 아리까리한 찻집같은 것이 있다.

밖에서는 안이 잘 들여다 보이지 않는 곳, 일명 방석집이라 불리는 술집이 즐비해 있다.

1960년대 초 아현시장이 생겨나게 되고, 1968년 아현 고가가 생길 무렵 유동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자 자연스레 이곳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현고가가 철거되 사라지면서 어둡고 가려져있던 모습이 마치 발가벗겨지듯 부끄러운 맨살을 드러냈다.

소식을 들어보니 아현고가가 사라진 곳의 땅값이 점점 오른다고 한다.

그동안 저평가 되있었던 것에 대한 반등으로 가치가 상승한다는 것이다.슬럼을 탈피해 환경이 좋아지며 그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환영 할 일이지만, 하루하루 먹고 살일이 큰일인 이곳 사람들에겐 임대료가 높아져 더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시점이 되면, 다시 어두운 곳을 찾아 꾸역꾸역 숨어 들어 갈런지도 모르겠다.

환경이 좋아지고 뭐고간에 당장에 누구 하나 그들 밥그릇을 챙겨주기나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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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옆을 둘러보니 이삼층 정도로 보이는 뭔가 심상치 않은 건물이 보인다.아현초등학교자리다.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그 건물의 명맥이 유지된 것이 예사롭지 않다.

일제시기 경기도공립사범학교라는 이름으로 1923년 설립되었고 1932년 경기도공립사범학교는 경성하현보통학교로 개명되었으며, 1944년 일제의 공업교육정책의 변화로 경기공립공업학교로, 그리고1953년엔 경기공업고등학교로 바뀐 것이다.

현재는 서울산업대학으로 쓰이고 있다.

그 긴 세월동안 많이도 바뀐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저곳에서 교육을 받았겠다.

아현 초등학교에 대한 자료를 조금 더 찾아보니, 일제시대에는 이곳과 청파동일에 일본관사들이 많았고 북아현동 주변에는 은행에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이 초등학교는 관사에 있는 학생들이 주로 다녔고 그 지위도 웬만하지 않아, 일반 한국인 자녀들은 다닐 엄두도 못냈다고 한다.북아현 골목 초입에 있는 굵직굵직하고 번듯한 주택들을 보니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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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골목으로 들어가 보자.골목에 접어들어 조금 올라가다 보니 멀찍이 목욕탕 굴뚝이 보인다.

햐~ 여기에 동네 목욕탕이 있나보다 하고 얼른 가보니 목욕탕은 금새 보이질 않고 조그만 교회와 여러개의 샷시 문이 보인다.

일주일 전 선답 할 때, 샷시 문을 열고 나오는 나이 지긋한 노인 분께 목욕탕 못보셨냐고 여쭤봤다.

재밌게도 이 건물이 목욕탕이 맞단다.

한 십년쯤 전인가 목욕탕을 수선해서 목욕탕은 교회로, 남녀 탈의실은 방으로, 보일러실은 보습학원으로 개조해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 신축을 하지 못한다.

때문에 사람이 점점 줄어 수입이 변변찬은 목욕탕 주인은 그동안 일궈놨던 목욕탕을 눈물을 머금고 폐기하고, 매달 조금씩이라도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월셋방 등으로 개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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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올라가니 약간 언덕진 곳에 나즈막하게 서있는 '북아현 맨숀'이란 아파트가 보인다.

지어진지 4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같이 동행했던 모 선생님은 어렸을적 이곳 북아현 근방에 사셨는데, 그분 말씀에 어렸을적 다녔던 치과병원 선생님이 여기 산다고 자랑하셨던 적이 있다고 하신다.

그시절 치과병원이면 그야말로 인텔리 아닌가? 나름 수입도 짱짱한게 떵떵거리실 정도는 됐음직 하다.

아니나 다를까 들어가는 입구는 경비실도 번듯하다.

주변을 청소하고 계시는 점잖게 나이 드신듯한 경비 아저씨께 이곳에 대해 이것저것 여쭤보니 정말 처음에 지어질 당시에는 보통 아파트는 아니었겠다 싶다.

여기는 연탄보일러가 아니라 첨부터 기름보일러 였었다고 한다.

40년전 기름보일러였으면 요즘 표현으로 '완전 짱'인 곳이였을 텐데 말이다.

외벽도 튼실해 보이는게 창문 샷시만 좀 손보면 좋아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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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미터쯤 올라가니 시야가 탁 트이며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나즈막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희한한 광경이다.

그 동네를 들어가는 어귀에는 재미난 화단이 있다.

다른집의 방을 덥혔을 구들과, 집의 외벽을 화려하게 꾸며줬을 붉은색 벽돌을 모아, 아무렇게나 막쌓은 화단은 도구나 수단의 구분없이도 뭔가 쓸만 한 것들이 만들어 질 수도 있구나 싶게 만든다.

'꼬막 껍질을 엎어놓은 듯한' 이란 표현으로 이곳의 모습을 글로 옮긴이도 있듯이,

이곳은 거의 대부분 단층의 막 얹은 기와나 슬레트를, 비가 샐까봐 천막으로 덮고 돌로 날아가지 못하게 눌러 놓은 지붕들이 새까맣게 더덕더덕 붙어 있다.

맘을 가다듬고 추스르게 만드는 놀라운 모습들이다.

고향을 떠난 이들이 가난과 추위를 피해 도망치듯 정착한 곳이 이 곳일까?

구루마(수레) 마저 다닐 수 없는 계단과 좁은 골목길 사이에 들쭉날쭉 제멋대로 들어선 집들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처럼 쓰러질듯 제멋대로지만 비틀대는 그 모습이 아스라하기도 하다.

소리한번 지르면 여기 동네 사람들 백명은 어느집에서 나는 무슨 소린지 까지도 구분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있어 보인다.

사춘기 여드름쟁이 소년소녀들은 자기가 살던 동네가 여기라는 걸 숨기고 싶어 했을것 같아 왠지 맘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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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뭘 자꾸 찍어대는 거요? 여기 못사는 사람들 사진을 그렇게 찍고 싶소?'

지난 선답에서 쪽방 문을 열어놓고 뭔가를 열심히 씻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약간 뿔이 난 어투로 던진 말이었다.

이번에도 그 할아버지를 여지없이 다시 만나게 됐다.

어이쿠 오늘도 혼나겠네 싶어 얼른 달려가 꾸벅 인사를 드렸다.

오늘도 그 집에서 문을 열어놓고 뭔가 열심히 하시며 시간을 보내고 계셨던것 같다.

첫 대면 때는 그리 역정을 내시더니.. 이번엔 맘이 풀리셨는지 주거니 받거니 말동무로 생각해주신다.

여기서 깜작놀랄 반전이 있다.

할아버지는 젊었을때 사진 작가 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나름 작품 전시도 하고 사진관도 운영하고 말이다.

사용하는 단어가 예사롭지 않다.

트라이포드며 트리밍이며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로 렌즈를 대신해 찍어야 했다는 등.. 정말 젊었을때 한가닥 하셨나보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눈매도, 얼굴의 빛깔도 예사로운 포스는 아님이 보인다.

그러니 여기서 깝죽대고 조그만 핸드폰으로 찰칵거리고 다니니 그 꼴이 좋아 보일리 없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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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장비네 뭐네 다 떠넘기고 여기까지 왔다고 하시는 말 끝을 더 붙들고 대화를 이어가기엔 죄송스러운 것 같아, 집앞 기와에 앉아 있는 고양이 이야기로 얼른 화제를 넘겨버리고 말았다.

고양이도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았는지 사람이 그리워 문을 열어두는 할아버지네 앞에서 얼쩡인다는 것이다.

불쌍하기도 해서 먹이도 주고 하니 이제는 마치 자기 집처럼 문앞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린다고 한다.

그렇잔아도 그 고양이는 할아버지를 뵈러 갈 때 그 집앞에서 푹석앉아 할아버지 하시는 일을 구경하고 있었다.

둘다 서로의 외로움을 그리 달래주기로 했나보다.

그리저리 이야길 나누고 있으니 골목답사 팀들이 한 아주머니와 담소를 다 나누고 드뎌 움직인다.

나도 다시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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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꺽으니 마치 조선시대 민화처럼 고양인지 표범인지 구분이 안가는 털 많은 담요가 화창한 가을 햇살에 일광욕을 하고 있다.

어렸을적 이런 담요가 집에 있었던것 같은데... 좀더 붉고 낙타 그림이 있었었던가?

그 담요에 같이 발을 넣고 고구마 까먹던 형, 누나 그리고 부모님까지 생각이 미치니...덜컥 눈물이 날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여성호르몬 분비가 촉진되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는데.. 내가 지렁이도 아니고...암수 한몸인가 싶어 혼자 낄낄대니.. 이거 미친놈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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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 끝에 다다르니 벽 한구석에 커다랗고 동그란 시계가 하나 걸려있다.

걍 고장난거 걸어놨나 싶어 자세히 보니 어~ 틀림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비교해보니 사십분이 느리다.

허허~ 그러면 그렇지.. 쌩쌩한 시계를 이곳에 걸어 둘리 없지 싶었다가...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니..구지 이곳에 걸어두는 시계가 시간이 맞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면 가는대로 아무렇게나 놔두고 싶은, 이곳 어느 집에 사는 철학가의 타임머신 아닐까?

그래서 이곳의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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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엔 껍질이 여러겹인 함석 벽이 있다.

이 벽엔 수많은 벽보가 붙었었나보다.

너덜대는 걸 이미 넘어서서 이미 여러겹의 표피를 이루고 있다.

재개발에 대한 각종 공고문에서 부터 이삿짐센터, 파출부, 인력모집, 그리고 각종 분식집과 중국집 등등..

여기에 붙은 그 많은 찌라시 들은 어느 누군가에 의해서 붙여졌을 것이고, 어느 누군가에 의해 읽혔을 것이며, 어느 누군가에 의해서 뜯겨 나갔을 것이다.

수많은 날 동안 곳곳의 쪽방에서 지내는 이들의 소식이 되어주고, 직장도 되어주고, 밥도 먹여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여러겹의 표피만 남아있다.

청소를 하던 다시 찌라시를 붙이던... 어쨋든 이제는 뭔가 다시 해야 할 것 처럼 보인다.

더 늦어지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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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 큰 골목이다.'강미용실'이란 글자도 잘 보이지 않은 옛날 함석 샷시로 굳게 닫힌 단칸 가게가 보인다.

한때는 이 마을 아줌마들의 뽀글거리는 파마와 동네 소식통 구실을 톡톡히 해냈을 것인데..

지금은 어느 한 구석에서도 그 수다스럽고 북적댔을 모습을 옅볼수가 없다.

추울때면 꽁꽁 얼어버렸을 수도를 녹이는 가게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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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가니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붉은 깃발이 보인다.

재개발지역에 걸려있는 붉은 깃발은 재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제법 많이 걸려있다.

주민들 이야길 들어보니 가게세를 받고 있거나 월셋방을 주고 있는 주인들은 이곳이 재개발 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한다.

꼬박꼬박 달세가 들어오는데 목돈 얼마 받고 나간들 뭐하겠냐 싶은 것이다.

뿐만아니라,조그만 단칸집 주인들도 반대 한다고 한다.

여기가 개발되면 다시는 여기로 돌아 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랬구나.. 그래서 깃발로 그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구나

그런데 왜 하필 붉은 색 일까?

붉은 색은 색중에 가장 현란하고 아름다운 색으로 인식된다.

인간의 몸에도 그와 똑같은 붉은색의 피가 흐르고 있다.

몸이 살갖이 찢어지고 터지면 붉은 색 피가 흐른다.

재빨리 수습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근원적 공포감이 몰려온다.

붉은 색은 그래서 아름다움과 공포를 둘다 가지고 있는 색인 것이다.

여기에 걸려 있는 그 붉은 색 깃발은 공포심을 극대화 하기 위한 도구일지도 모르지만..바람에 흣날리는 그 깃발의 색은 아름답기만 한건 현실이 더 짠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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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내려서다가 다시 올려보니 뭔가 을씨년 스러운 두개의 아파트처럼 보이는 건물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옆에 앉아서 쉬고 있던 쉰 중반이 넘은 아주머니가 오히려 먼저 말을 건네 알려준다.

'저거 금화아파트에요..내가 중학교때 저 아파트가 이미 있었어요.

내 친구가 저기 살아서 놀러갔었던 적도 있었어요..

아파트 산다고 해서 잘사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데..지금 갸는 어디사나 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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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딜쿠샤의 소유주였던 부르스테일러의 아버지 윌리엄테일러의 사진이며, 여기 금화아파트 자리에서 시청방향으로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현재 사진은 남서쪽방향으로 찍은 사진이어서 비교는 좀 어렵겠다.)

금화아파트는 박정희 정권시절 서울시 김현옥 시장과 함께 만들어낸 허울좋은 시민 아파트다.

저소득층의 주거를 해결하겠다고 해서 적은 예산으로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건설하다보니 입주한지 불과 몇개월도 안되 금이가고 배관이 뒤틀려 오물이 새기도 했다.

연탄을 때는 방식이다보니 금이 간 벽으로 가스가 새 중독되는 일도 허다했다.

더군다나 가난한 이들은 딱지라고 해서 이곳에 살 권리를 중산층에 팔고 나가버려 시민아파트로서의 자부심은 금새 낙엽처럼 떨어져 버렸다.

빠른시간에 노후화가 진행된 시민아파트들은 점점 슬럼이 진행됐고, 딱지를 팔고 나갔던 가난한 이들이 다시 찾게되는 아이러니한 곳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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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욕의 계단을 한단한단 밟고 올라서며 그로테스크한 건물의 모습을 점점 가까이 바라본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한 노인 분이 욕을 해대며 따라 나선다.

'느그들 여기 왜왔어? 어제 영화찍는다는 놈들은 쓰레기 왕창 버리고 갔는디..

느그들도 같은 놈들이제..

X벌 넘들... 뭐 찍는 다고 카메라 들이대고 지랄들이야 시키들아..

여기 살던 사람들이 얼마나 가슴 찢어졌는지 알고나 찍냐 이너무 시키들아...'

아.. 우려했던게 터졌나보다 싶었다.

우리에게는 이 답사가 주말을 즐기는 하나의 낭만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치열한 삶이자 꼭꼭 홀랑벗겨져 길바닥에 내평겨진 것 처럼 숨겨놓은 치부를 남들에게 들켜버린 느낌일지도 모르는것 아니겠는가.

도끼와 돌을 들고 거품을 물듯 달려드는 모습에서,

우리는 뒷덜미가 뻣뻣해지는 공포보다는, 어쩌면 그들과 우리의 부술수 없는 괴리감이 이미 팽배해져 버린 것과,

어쩌면 그들의 성스러운 영역을 침범당하고 유린당할때 느끼는 수치심이, 그저 주말 여가로만 생각했던 내 자신과 한심스럽게 교차되며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그 대상이 모호한 분노는 그 어떤 술로도 삭힐 수 없는 마음속의 응어리로 그들에게 남아 있을 것만 같아 맘이 무겁고, 무겁고, 또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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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를 하던 분들이 다들 놀래고 기가막히기도 해서인지 어쩔줄을 몰라 한다.

많은 사람들과 많은 음식들로 넘쳐나는 영천시장을 둘러 봐도 흥이나긴 커녕 부들부들 떨리는 속은 쉽게 진정되질 않는다.

아.. 노년분에게 욕을 얻어먹은 것 때문이 아니라 괜한 실수를 했나싶기도 하고.. 이게 맞나 싶기도 해서 인것 같다.

답사를 같이 한 분들과 순대국과 막걸리를 앞에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니 그나마 맘이 놓인다.

그저 그냥저냥 놀러 다니는게 아니라, 모두가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같이 고민하고자 하는 모습들인 것을 확인해서 그렇게 맘이 놓였는가 보다.

담에 그 할아버질 찾아갈 땐 일단 하이바는 필수로 가져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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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자료의 소재를 제공해주신 장상일 감독님, 역사 자료를 제공해주신 통의도시연구소의 정호균연구원님께 감사드린다.